Hakgojae Artcenter
풍경의 끝없는 잔향
나는 풍경을 하나의 고정된 장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내게 풍경은 눈앞에 잠시 머무는 형상이면서도, 지나간 뒤 오래도록 감각과 기억 속에 남아 되울리는 잔향에 가깝다. 제주 오름의 능선과 숲, 바람과 안개는 분명한 형태로 다가오다가도 이내 흐려지고 스미며 또 다른 인상으로 남는다. 그래서 내가 붙잡고 싶은 것은 보이는 풍경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이 내 안에서 흔들리고 겹쳐지며 다시 생성되는 순간들이다. 「풍경의 끝없는 잔향」은 바로 그 사라짐과 남겨짐 사이에서 계속 울리는 풍경의 시간을 따라가는 작업이다.
나는 제주의 오름(제주오름 368프로젝트)을 그린다. 하나의 풍경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수많은 지형의 기억들을 따라간다. 제주에는 368개의 오름이 존재하고, 나는 그 각각을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며 바라보고자 한다. 잘 알려진 오름뿐 아니라 개간과 변화의 과정 속에서 본래의 형상이 희미해진 오름까지도 내게는 모두 같은 무게의 풍경이다. 이 작업은 오름을 하나의 장엄한 전경으로 묶어내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 소멸과 생성의 흔적이 겹쳐지는 산수로 다시 구성하려는 시도이다. 그렇게 368개의 오름은 개별적인 풍경이자, 동시에 제주라는 장소를 새롭게 읽게 하는 하나의 거대한 지도이기도 하다.
내게 수묵은 대상을 정확히 묘사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자연을 끝내 다 붙들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매체이다. 먹은 번지고 스미고 겹쳐지면서 형상을 분명하게 세우는 동시에 다시 흐리게 만든다. 나는 바로 그 모호함 속에서 풍경이 가진 시간성과 감각의 깊이를 발견한다. 선명하게 규정되지 않기에 오히려 더 많은 기운과 여백이 살아나고, 그 안에서 자연은 하나의 확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로 다가온다. 수묵의 모호성은 결국 자연을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을 다시 사유하게 하는 태도이자 감각의 언어이다.
(작업노트/오민수)